캐나다에 처음 도착한 이민자, 유학생, 워크퍼밋 소지자에게 은행 계좌 개설과 신용점수(Credit Score) 쌓기는 정착의 뼈대가 되는 실무다. 월세 계약, 휴대폰 개통, 자동차 할부, 향후 모기지까지 대부분의 금융 활동이 이 두 축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캐나다 신용 이력은 한국에서 가져올 수 없고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하므로, 도착 첫 90일 안에 어떤 순서로 움직이느냐가 이후 몇 년의 금융 조건을 좌우한다. 이 글은 신규 정착자가 자주 놓치는 지점을 중심으로 실무적 흐름을 정리한다.
1. 도착 직후 — 은행 계좌부터 만든다
캐나다의 대형 은행은 흔히 Big Five로 불리는 RBC, TD, Scotiabank, BMO, CIBC가 있고, National Bank와 각 지방의 신용조합(Credit Union)도 널리 이용된다. 대부분의 은행이 신규 이민자(Newcomer) 전용 패키지를 운영하며, 여기에는 일정 기간 월 수수료 면제, 국제 송금 무료 한도, 신용 이력 없이 발급 가능한 신용카드 등이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부 혜택은 은행·시점마다 다르므로 지점 방문 전에 홈페이지에서 현재 조건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계좌 개설에 필요한 서류는 통상 여권과 하나의 이민 관련 문서(COPR, PR 카드, 워크퍼밋, 유학허가서 등), 그리고 **캐나다 내 주소 증빙(임대차 계약서, 유틸리티 청구서 등)**이다. 아직 정식 주소가 없을 때는 호스트 가족이나 임시 숙소 주소로도 개설 가능한 경우가 많지만, 신용카드 발급이나 신용조회 시 주소 변경 이력이 남을 수 있어 가능하면 정식 임대차 계약 후 등록하는 것이 깔끔하다.
이 시점에 함께 준비할 것이 **SIN(Social Insurance Number)**이다. SIN은 은행이 이자 수익을 CRA(국세청)에 보고할 때 사용하므로 계좌 개설 자체에는 필수가 아니지만, 입금 계좌·급여 수령·이자 신고에 필요하므로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이 좋다.
2. 신용카드 — 신용 이력의 유일한 시작점
캐나다 신용점수는 크게 Equifax와 TransUnion 두 신용평가사가 관리한다. 점수는 300~900점 사이로 산정되며, 통상 660점 이상을 양호, 725점 이상을 우수로 본다. 문제는 이 점수가 캐나다 내에서의 신용 사용 이력이 있어야만 계산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의 신용카드 사용, 대출 상환 이력, 심지어 캐나다 내에서의 데빗카드 사용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따라서 신규 이민자의 첫 과제는 캐나다 신용카드 한 장을 발급받아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신용 이력이 없는 상태에서 발급이 어려운 경우, 다음 두 가지 경로를 활용할 수 있다.
- 신규 이민자 프로그램의 신용카드: 대형 은행의 뉴커머 패키지는 신용조회 없이 소액 한도로 신용카드를 발급해 준다. 가장 손쉬운 첫걸음이다.
- Secured Credit Card(담보 신용카드): 본인이 예치금(보통 몇백 달러)을 담보로 맡기고 그 한도만큼 사용하는 카드다. 담보 성격이지만 신용평가사에 정상적으로 보고되므로 신용 이력이 쌓인다.
카드가 발급되면 원칙은 단순하다. 매월 청구액 전액을 기한 내에 상환하는 것이다. 리볼빙, 최소결제, 연체는 신용점수에 치명적이므로 자동이체를 설정해 두는 것이 안전하다.
3. 신용점수를 결정하는 다섯 가지 요소
Equifax·TransUnion이 공개하는 산정 원리는 대체로 다섯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각 요소의 가중치는 평가사마다 다르지만 큰 틀은 공통적이다.
- 결제 이력(Payment History):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단 한 번의 30일 이상 연체가 수십 점을 깎을 수 있다.
- 신용 사용률(Credit Utilization): 한도 대비 사용액 비율. 통상 30% 이하 유지가 권장된다. 한도 1,000달러 카드라면 청구 시점에 300달러 이하로 관리한다는 뜻이다.
- 신용 이력의 길이(Length of Credit History): 가장 오래된 계좌가 얼마나 오래됐는지가 반영된다. 그래서 첫 카드는 웬만하면 해지하지 말고 유지하는 것이 좋다.
- 신규 조회 및 계좌(New Credit): 짧은 기간에 여러 카드·대출을 신청하면 조회(Hard Inquiry)가 누적되어 점수가 하락한다.
- 신용 유형의 다양성(Credit Mix): 신용카드, 자동차 할부, 라인 오브 크레딧 등 종류가 다양할수록 유리하지만, 이는 나중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면 되는 요소다.
이 원리를 신규 이민자 관점에서 뒤집으면 이렇게 정리된다. 한 장의 카드를 낮은 사용률로 오래 유지하며 매달 전액 상환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신용점수 축적법이다.
4. 자주 발생하는 실수
첫째, 한도가 낮다고 여러 카드를 동시에 신청하는 경우다. 조회가 몰리면 점수가 오히려 하락한다. 6~12개월 간격으로 필요할 때만 추가하는 것이 정석이다.
둘째, 첫 카드를 사용 후 해지하는 경우다. 이력 길이 요소를 잃게 되어 몇 년치 신용 이력이 사실상 리셋된다. 연회비 무료 카드라면 소액이라도 매월 결제·자동상환 상태로 유지하는 편이 낫다.
셋째, 주소 변경을 은행·통신사에 반영하지 않은 채 방치하다가 청구서 미수령으로 연체가 발생하는 경우다. 캐나다는 이사 빈도가 높은 편이므로 이사 직후 은행·카드사·통신사·CRA에 주소 업데이트를 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넷째, 자신의 신용점수를 확인하지 않는 습관이다. Equifax·TransUnion은 캐나다 거주자에게 무료 신용조회 채널을 제공하며, 대형 은행 앱에서도 무료로 조회 가능한 경우가 많다. 조회 자체는 Soft Inquiry로 처리되어 점수에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분기에 한 번은 본인 신용보고서를 직접 확인해 오류·도용 흔적을 걸러내는 것이 안전하다.
5. 90일 로드맵으로 정리
첫 30일에는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SIN을 등록하며, 뉴커머 패키지 또는 시큐어드 카드로 첫 신용카드를 확보한다. 60일 차까지는 카드 자동상환을 설정하고, 신용 사용률을 30% 이하로 관리하는 습관을 정착시킨다. 90일 차에는 Equifax 또는 TransUnion에서 최초 신용보고서를 조회해 본인 정보와 이력이 정상적으로 등록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이 흐름을 지키면 통상 6~12개월 안에 유효한 신용점수가 산출되기 시작하고, 이후 자동차 할부·모기지 심사에서 캐나다 태생 신청자와 실질적으로 동등한 조건에 도달할 수 있다.
한 줄 정리
은행 뉴커머 패키지로 계좌·첫 카드를 확보하고, 한 장을 낮은 사용률로 오래·자동상환으로 유지하며, 분기에 한 번 본인 신용보고서를 조회하는 것이 신규 이민자가 캐나다 신용점수를 가장 안전하게 쌓는 정석이다.